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7월 4일생 (문단 편집) == 줄거리 == 위스콘신 주의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론 코빅은 어릴 적부터 군인과 전쟁 영웅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미국 근본주의 기독교의 부정적인 면을 형상화한 모습인데 젊은 시절 론이 [[플레이보이]] 잡지를 가지고 있던 걸 들키자 "그런 역겨운거 당장 우리집에서 치우고 다음날 교회가서 고해성사 해",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인 아버지와는 달리 참전을 독려하며 "공산주의는 소멸해야 해"라는 말을 한다든지, 말 그대로 금욕주의와 반공주의가 겹쳐진 근본주의 기독교 그 자체였다.. 고등학교에서 레슬링으로 대학에 가려했으나 실패하고, 학교에 온 모병관의 말을 듣고 [[미합중국 해병대]]에 자원 입대한 뒤[* 해병대 모병관 역으로는 올리버 스톤의 베트남전 첫 영화인 '플래툰'에서 냉혈한 번즈 상사로 열연한 [[톰 베린저]]가 우정출연했다.],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파병을 가게 된다. 코빅은 해병대 병장으로 베트남전 파병은 이번이 2번째이다. 허나 그가 겪은 전쟁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달리 아이와 민간인이 학살당하는 생지옥[* 극중에선 미군의 총격에 의해서 학살당한 민간인들 사이에서 살아있었던 갓난아기마저도 미군의 포격으로 죽는다. 전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생명을 앗아간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장면이다.]이었음을 알게 되고, 전투 도중 오발 사고로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빌리라는 이름의 후임을 죽이고 만다.[* 노을이 져 눈에 햇빛이 비치는 상태에서 빌리가 튀어나와 적군으로 오인해 쏴버렸다.] 정직하게 사실대로 상부에 고백하나 상부에선(일이 커지기 싫으니까) [[병영부조리/해외 사례#s-4|작전 도중 사망으로 덮어버렸고]], 그 또한 격렬한 전투 중 척추에 총상을 입어 [[하반신마비]] 장애인이 되어 퇴역을 하게 된다.[* 되는 과정이 상당히 불쌍하다. 일단 입원한 군병원 시설 자체가 열악했고, 예산 때문에 기구와 치료제가 부족했다.게다가 코빅이 불만을 토로하니까 수면제를 먹여 재우려는 등 약물을 남용하는 곳이다.][* 다만 실제로는 베트남 파병 직후에 곧바로 부상을 당한 것은 아니었고, 군 생활 2년만에 발생한 일이었다. 그것도 원래는 1년을 채운 후 미 본토로 복귀했다가 본인의 지원으로 베트남에서 추가 복무하던 중에 사건이 발생했다. 만약 그가 베트남에 남지 않고 타 지역에서 계속 복무했다면, 이후 그의 인생은 전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http://en.wikipedia.org/wiki/Ron_Kovic|위키피디아의 론 코빅]]] 코빅은 장애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휠체어에 탄 상태에서도 자신은 참전용사로서 자랑스럽다고 연설까지 한다.[* 하지만 이 연설도 도중에 베트남에서 겪었던 끔찍한 기억들의 후유증으로 인해 마치지 못했다.] 그러나 고국은 반전 여론이 사회 전반으로 퍼져 닉슨 행정부에 대한 반정부 시위가 연일 일어난다. 코빅은 처음에는 반전 시위대를 '베트콩 지지자'로 간주할 정도로 굉장히 경멸했으며, 동생에게 [[히피|대마 피는 놈들]]과는 어울리지 말라고 화낸다. 그러나 결국 [[PTSD]]와 빌리를 죽였다는 죄책감, 장애에 대한 절망감[* 참전을 독려한 어머니에게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은 기독교 윤리로 금지된 자위조차 장애 때문에 하지 못한다며, 마을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소리치며 슬퍼한다.]에 폐인이 되어 멕시코 등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술과 매춘으로 인생을 낭비하며 산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빌리의 고향에 방문하여 '귀하의 자녀는 용감히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정도로 알고 있는 부모와 과부가 된 빌리의 아내에게 자신이 실수로 살해했음을 눈물을 흘리며 고백한다. 코빅은 우연히 한 때 짝사랑한 도나를 만나러 그녀가 다니는 뉴욕 시라큐스 대학을 방문했다가, 거기서 데모에 앞장서 뛰는 도나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가하는 경찰을 보고 그를 지탱해주던 기존의 가치관이 송두리채 흔들리고, 데모 학생들에 대한 발포 명령을 내리기를 서슴지 않는 위정자들의 도덕성에 회의를 느끼면서 그는 새로운 답을 찾지 못하며 괴로워하다, 반전 운동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반전 시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결국 베트남전 참전자들과 함께 워싱턴까지 반전 시위대를 이끌고 전진하여 유명한 반전 운동가로 거듭난다.[* 이 때, 베트남전에 참전한 군인들이 외치는 '''"We don't like this FUCKING WAR!"'''가 명대사.] 이후 코빅은 1972년 닉슨의 선거 캠프에 와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다. > "I'm here tonight to say that this war is wrong, that this society lied to me, lied to my brothers. They've deceived the people of this country, tricked them into going 13,000 miles to fight a war against a poor, peasant people who have a proud history of resistance, who have been struggling for their own independence for 1,000 years - the Vietnamese people. I can't find the words to express, and the leadership of this government sickens me. People say that if you don't love America, then get the hell out. Well, I love America. We love the people of America very much, but when it comes to the government, it stops right there. The government is a bunch of corrupt thieves, they are rapists and robbers. And we are here to say that we don't have to take it anymore. We are here to say that we are here to tell the truth; they are killing our brothers in Vietnam! We want them to hear the truth tonight!" > >“제가 여기 온 건 이 전쟁이 잘못됐다는 걸 말하기 위해섭니다. 이 사회는 나와 내 형제들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 나라가 국민들을 기만했습니다. 우린 그 거짓말에 속아 13000마일이나 떨어진 베트남까지 가서 가엾은 소작농들에 맞서 전쟁을 치렀습니다.[* 미국에서 베트남의 거리를 측청해보면 13000마일이다.] 당당한 저항의 역사를 가진 자신들의 독립을 위해 지난 천 년간 투쟁해온 베트남 사람들과 말입니다. 이 정부의 지도자라는 자가 얼마나 역겨운지 말로 표현하기조차 힘듭니다. 사람들은 미국이 맘에 들지 않으면 떠나라고 합니다. 전 미국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현 닉슨 정부에 대해서는 사랑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정부는 부패하고 썩어빠진 도둑 집단입니다. 저들은 강간범이자 강도입니다. 이제는 묵인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기 위해 우린 여기까지 왔습니다. 진실을 말하려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베트남에 있는 미군들을 살해하고 있는 저들에게 진실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닉슨 대통령이 물러나고, 민주당이 인기를 얻으면서 코빅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 대회장에 연사로 초청된다. 연단을 향해 휠체어를 밀고 가는 코빅의 눈 앞에, 언젠가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을 TV로 들으며, "론 네가 대통령처럼 멋진 연설을 하는 꿈을 꾸었다"고 말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장면은 좀 역설적인데, 극중에서 코빅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하면서 전쟁 영웅의 이상을 부추겼던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코빅이 베트남에 파병되기 직전에도 아버지는 걱정했던 반면, 어머니는 "공산당을 막아야지. 그건 신의 뜻이란다. 잘했다. 다만 몸조심 하렴."이라고 말할 정도고, 코빅이 베트남에서 돌아오고 난 뒤 반전 운동에 휩싸였을 때도 끝까지 전쟁을 지지하던 모습을 보였다.][* 여담으로 이때 아버지는 "웬만하면 안전한 지역으로 파병가는 게 낫지 않니? 유럽이나 한국처럼"이라고 말한다. 즉 코빅의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더 정치적으로 극보수에 가깝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